
“날씨가 너무 흐리네요. 곧 비가 내릴 것 같아요.” 병원 앞 현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걱정스러워 졌다. 오늘은 우리 동아리 친구들과 의료 봉사활동을 가는 날인데
“혹시 날씨가 흐려져서 환자분들이 많이 못 오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1년에 6번 정도 기독병원의 선생님들, 그리고 굿피플과 함께
의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을 진료하는 의료 봉사를 한다.
의료 봉사는 나에게 아직은 미숙한 간호 학생이지만 나도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게 해주고,
팍팍한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따뜻한 인정도 느끼게 해주는 귀한 시간이다.
날씨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은 뒤로한 채 잠시 후면, 만나 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실 생각을 하며 서둘러 병원에서 의약품들과 진료물품 탁자들을 챙겨 차에 옮겼다.
버스를 타고 우리가 향한 곳은 함평 옥산리에 자리한 ‘옥산교회’였다.
달리는 차창내로 보이는 넓은 들판과 한적함에 절로 설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착하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반갑게 우리일행을 맞아 주셨다.
목사님의 환영을 받으며 교회 내에 들어가니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옹기종기 난로 앞에 모여 앉으셔서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손도 잡아주시고 반겨주셨다.
그 주름진 웃음 속에서 왠지 모를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외투를 벗기도 전에 자리 배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다란 교회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옮기며 선생님들이 진료하시기 쉽게 자리를 정돈했다.
외과, 내과, 정형외과, 안과, 치과, 물리치료실, 초음파 이렇게 구역을 마련하고 준비하니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어느새 진료시간이 되었다.
창밖의 날씨는 흐렸지만, 걱정과 달리 한 분 한 분 어르신들이 오시고
우리는 각자 분야를 맡아 진료를 도왔다. 혈압도 재드리고 구충제약도 드리고
눈이 어두우신 어르신들을 직접 선생님 앞에 모셔다 드렸다.
진료 중에 한 할머니는 양쪽의 눈이 모두 백내장이 생겨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단이 나오신 분이 계셨다.
쓰러운 마음에 뒤에 서서 선생님의 진료를 지켜보았는데 선생님이
“할머니 앞이 많이 잘 안 보이시죠?” 하고 말하셨다.
선생님의 물음에 할머니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머니 집에 누구랑 지내세요? 가족은 있으세요?” 하고 되물으시자
할머니는 아무도 없고 혼자 산다고만 하셨다. 할머니의 굽은 등이 더 야워 보였다.
할머니는 돈도 없고 이제 곧 죽을낀데 수술은 해서 뭣하냐며 이대로 살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그런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 여기 교회 다니시죠? 잘 댕기고 있어보셔요.
제가 여기 와서 꼭 수술 해 드릴께요.” 하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뒤에 섰던 나도 힘이 났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고 감사하다고 선생님의 손을 쓸어내리셨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분 한분을 사랑으로 진료해드리고 약국에서는 약도 지어 드리고 하니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그렇게 진료가 끝날 무렵 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목사님께서는 귀한 시간을 내어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며
동네에 가까운 병원이 없다는 의료의 취약함을 말씀하셨다. 앞으로도 종종 찾아가서
의료봉사의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굿피플과 기독병원과 함께 한 작은 의료봉사를 통해 세상의 따뜻함을 배우고 느끼게 된 것 같다.
특히 직접 찾아가는 의료 봉사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가시기 힘든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았다.
나도 내가 해드린 건 없지만 나의 작은 봉사에 큰 기쁨으로 감사함을 표현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뿌듯함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 이었던 것 같다.
글:자원봉사자 기독간호대학 2학년 이화윤

지난 3월 필리핀에서 만난 아이따 족을 만나기 위해
굿피플의 '애쓰는君과 보람인Girl' 들은 다시 피나투보산을 찾았습니다.
울퉁불퉁 고욕에 가까웠던 산길 행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아이이따 족을 만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챙이 넓은 모자와 마스크는 물론, 늘 배고픈 아이따족을 위한 넉넉한 쌀과 빵,
그리고 충분한 양의 항생제와 소염제, 그리고 피부 질환제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더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가 다섯 마을의 아이따족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산속 깊숙이 들어가 살고 있는 아이따 족을 만나기 위해선
산 입구에서 산악전용 차량인 트래킹 카로 갈아타야 합니다.
올라타기조차 힘겨운 트래킹 카에 나눠탄 일행은,
울퉁불퉁 화산재와 흙먼지가 날리는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기로 질퍽해진 땅은 여기저기 푹푹 패여, 순식간에 바퀴가 빠져버리기 일수였습니다.
아슬아슬한 산길과 물보라가 튀기는 계곡을 수차례 건너 불라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불라칸 마을
34가구가 살고 있는 불라칸 마을은 산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
이전에 만났던 마을들 보다는 나은 환경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신발조차 신지 않은 아이들이
일부러 구멍낸 듯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봉사팀을 반깁니다.
나누어주는 빵에 정신없이 달려드는 아이들이 귀여워 다가서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무서운지, 엄마 치마폭에 숨어버립니다.
빵을 나눠줄때 달려들던 그 모습은 어디 갔는지,
배고픔이 만들어낸 용기라고 생각하기엔 어딘가 서글픈 마음이 밀려옵니다.
다음 마을을 방문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 필리앤 마을
봉사단이 탄 차가 마을로 들어서자 어디서 모였는지 아이들이 잔뜩 모입니다.
매주 방문하는 박철환 선교사가 단상위에 올라가니
금새 두줄로 나란히 서더니 귀여운 목소리로 찬양을 재잘 거립니다.
그렇게 찬양을 재잘대더니 역시나 봉사단이 나누어주는 빵을 정신없이 받아 들고는
엄마 치마 폭으로 숨어버립니다.
75가구가 살고 있는 필리앤 마을엔 결핵환자 아주 많다고 하는데
빵 한조각으로 한끼의 식사를 대신해야하는 이들에에겐
결핵이 무슨 병인지 관심조차 없어 보입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할 수가 없으니,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던 필리앤 마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재잘거리며 찬양을 따라하던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파사풍안 마을
뒤뚱거리는 트래킹 카에 다시 몸을 싣고 또다시 한참을 달립니다.
마을과 마을을 오고가기고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던 중
계곡 건너 산중턱 대나무와 짚을 엮어 만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파사풍안 마을이 보입니다.
건너에서 손을 흔들어 데니, 신도 신지 않은 발로 아이들이 정신없이 계곡을 건너와 봉사단을 맞이합니다.
맨발로 이 험한 산을 오고가는 아이들을 보니,
트래킹 카에 앉아서도 힘들게 산을 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워집니다.
■ 마날랄 마을
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점심을 때운 봉사단 일행은 또다시 열심히 차를 달렸습니다.
차가 뒤집어 질뻔한 몇 번의 고비를 넘기자 마날랄 마을이 나타납니다.
31가구가 사는 마난랄 마을은 아이따족 마을 중에도 최악의 오지라고 합니다.
어떻게 알고 달려드지 일행이 차에 내리기도 전에 모여든 주민들은,
굿피플 일행을 보자마자 식수 공급을 위한 취수장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화산재가 섞인 식수를 사용하고 있는 그들에게
취수장을 통해 위생적인 식수공급이 가능할 수 있도록 검토하는 동안
나무지 일행들은 준비해간 쌀을 전달했습니다.
쌀을 전달 받던 라리무스(52세)씨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어서 감사하다”며
“굿피플을 통해 마을이 변화되길 바란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 알루난 마을
140가구가 산다는 알루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이곳에서 굿피플은 의료봉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나무그늘 밑에서 시작된 의료봉사에는 진료가 무서워 우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오는 엄마와,
진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줄 서 있는 아이들 등
불편한 여기저기를 가지고 온 마을 주민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아이들과 주민들 상당수는 화산재가 섞인 식수와 해충, 불결한 위생 상태로 피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항생제 한알 소염제 한알 우리가 흔히 바르는 피부연고만 있어도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이 깊은 산속에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숨가쁘게 다섯 마을을 방문하고 산을 내려가는 길.
역시나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화산재로 뒤덮혔던 이 곳에 이렇게 길이 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에
고욕스러운 길이 참을만합니다.
그렇게 거친 산길, 화산재로 뒤덮혔던 땅 곳곳에 다시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화산폭발이 삼켜버린 아이따족의 삶도
그렇게 다시금 화산재로 뒤덮힌 땅을 뚫고 새롭게 만들어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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