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빠진 개발
‘개발’이 한참인 캄보디아에서는 요즘 강제철거와 이주민 문제가 심각합니다.
도시에는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화려한 색을 입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도심 중앙의 낡은 건물들이 사람들 눈에 거슬리나 봅니다.
그 곳의 주민들은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어느 날 찾아온 강제철거의 포크레인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그 곳 주민들의 주거지 뿐만 아니라, 삶을 통째로 부수고 짓밟아버립니다.
5년, 10년 또는 몇 십 년을 그 자리에서 살아오던 주민들은 그 땅에 대한 권리도,
집에 대한 권리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망연자실하여 쫓겨납니다.
사실 권리를 주장할 줄 몰랐거나, 주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이 밟고 사는 그 땅은 그들의 것인데 말입니다.
‘재개발’은 많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도시빈민들이 가까스로 터전을 닦고 살아가던 거칠고 추한 땅은
부지불식간에 땅값이 치솟아 부동산업자들이 노리는 노른자 땅이 됩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 노른자에서 튀기는 국물조차 맛보지 못하지요.
1990년 이후 지금까지 강제 이주를 당한 주민들이 13만 3천명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제철거현장과 주민들이 강제 이주된 지역들을 현장 방문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먼저 프놈펜 시내 중심의 강제 철거 현장을 찾았는데,
잘 닦인 넓은 개발예정지에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쪽에는 우리나라의 P모 대기업이,
다른 한 편에는 G모 대기업이
멋진 고층 건물을 지을 예정이라며 멋진 청사진과 낯익은 깃발을 꽂아두었더군요.
외국에서 만나는 이런 순간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기업의 활발한 외화벌이를 자랑스러워해야할지,
강제철거 후 당당히 깃발을 꽂아둔 우리 기업을 모른 척 해야 할지..
그저 고개만 떨궈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잔인한 강제철거가 이루어졌던 지역들은 새롭게 들어선 건물들 아래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처럼 묻힌 듯 보였습니다.
한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도시 빈민들이 공간을 나눠 쓰며 촘촘하게 모여 살았을 땅에는
한 두 사람의 재벌이 공간의 낭비가 심해보이는 의리 의리하게 큰 건물들을 지어놓고는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습니다.
씁쓸한 기분으로 이동한 두 번째 장소는 주민들이 강제 이주된 지역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이상 달렸을까요.
도로가도 아니고 꼬불꼬불 좁은 길을 또 한참 들어간 후에야 차는 멈춰 섰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를 붙여놓은 듯, 커다란 성냥갑을 성의 없이 늘어놓은 듯
강제철거를 감행한 기업에서
그것도 오직 건물주들을 위한 보상으로 건축하여 제공한 주거공간이라는데..
감옥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황량한 주거환경과
구멍만 파놓은 듯한 화장실에 그저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돈은 사람들을 가르고 차별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철거지역의 건물주들 중에서도 좋은 위치에 비싼 건물을 가지고 있던 주인들은
일찌감치 기업과 잘 협상을 해 2층 건물을 받거나 개중에서도 좋은 집을 받았고,
협상에 비협조적이거나 늦게까지 권리를 주장했던 건물주들은
더 안 좋은 집을 받아 더욱 환경이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이 아니면 정말 갈 곳이 없었던 가난한 세입자들은
어느 날 트럭에 태워 그야말로 ‘떨어뜨려놓고’ 갔다는 강제이주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도시에서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없을 만큼 고립된 곳에
집도 절도 없이 말 그대로 사람들만 ‘덩그러니’ 버려진 격이었습니다.
300가구가 이곳으로 쫓겨 왔지만, 도저히 희망이 없는 이곳에 정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2년도 채 되지 않아 다들 떠나가고, 나무와 나뭇잎을 이용해 지은 오두막에서
지금은 80여 가구만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제이주지역 두 군데 모두
한국 사람들이 또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주지역에는
어느 한국 NGO에서 이주 빈민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었고,
두 번째 이주지역에서는 한국의 어느 교단에서 교회를 세워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의 도움에 고마워했고, 누가 봐도 그런 도움이 절실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World Bank)에서는
같은 지역 같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도심에 살던 그 땅의 본 주인인 주민들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캄보디아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강제철거로 정부에서 개발을 진행하는 300헥타르의 땅 중
15헥타르만을 강제 철거된 주민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300헥타르 중 15헥타르.
그 15헥타르만 주면 도심의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세계은행에서 건물을 짓고
강제 철거된 주민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것은 연륜 있는 세계은행이
캄보디아 강제철거 이주민을 깊이 배려하고 돕는 놀라운 방법이었습니다.
주민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는 모습이 깊은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세계은행의 주장에 아직 캄보디아 정부는 묵묵부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개발의 진통을 앓으며 성장해온 우리나라가
지금 그 진통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를 돕는 방법이 이런 방식이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눈에 보이는 필요를 채우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보다 지혜롭고 사려 깊은 대한민국의 ‘情’ 나눔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글_ 김민영 (지구촌 나눔운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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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2011/06/09 14:45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사진을 보니 예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봤던 낡은 건물이네요...이제 그곳에도 개발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네요. 개발의 현장에서 힘없는 이들을 옹호하여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당장 이들의 필요에 대응해주는 것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