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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PEOPLE becomes good people!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1/07/17 08:03



한국에 돌아와 붐비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 밤늦은 시각에 편의점에 가다가,
따뜻한 물로 마음껏 샤워를 하다가, 문득문득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케냐의 끝없는 대자연, 소똥집과 염소떼, 내 창문을 꽉 채워주던 은하수,
까맣고 작은 아이들의 목소리와 손의 감촉
...
그곳에서의 지난날들이 너무나 선명해서 서울의 생활은 가끔씩 영화 속 장면들처럼 괴리감이 느껴진다.

차로의 접근조차 쉽지 않았던 오지마을 일마르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4시간 동안 길도 없는 산길을 덜컹대며 달리다 보면
온통 나무와 풀 뿐인 대자연 한 가운데에 마사이 마을이 나타난다
.
비를 쫓아 소를 몰고,
구름과 해의 움직임을 읽으며 광활한 자연 그대로를 느끼며 사는 마사이의 삶.
전기와 물조차 상시 공급되지 않는,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그곳에 산다는 것은
경이롭고도 경외로운 일이었다
.



굿피플 케냐사업장은 원거리 간헐적 지원이 아닌,
마을 내에 직접 지부를 두고 거주하며
,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을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보건소 및 우물이 완공되어 운영 중에 있고
,
아동결연 사업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 신장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의료, 아동교육, 식수사업 등 생활전반에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보다 심층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꿈꾸고 있다
.
나의 주 업무는 아동결연 사업을 총괄하고, 보건소에 상주하며 행정사안을 돕는 것이었다.

오지마을에서의 의료보건과 아동교육 사업은 곧 마을사람들의 인권 그 자체이며, 삶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면서 나는 책이나 TV에 자주 회자되는
화려하고 개성 있는 문화 이면에 자리 잡은 그들의 깊은 고통을 마주해야했다
.

일마르바에 보건소가 생기기 전,
인근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험한 돌길을 6시간 이상 걸어 나가야 했고,
해열진통제 몇 알을 얻기 위해 염소 한 마리와 물물교환을 해야 했다.
극심한 가뭄과 때 아닌 홍수의 반복으로 환절기마다 수인성질병에 시달리며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여중생들의 임신과 자퇴는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미흡한 산후관리는 산모의 생명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보건지식의 부족으로 에이즈는 확산되고 대물림되었다.
비위생적인 환경과 영양부족으로 아이들은 만성적인 피부질환과 기아로 고통 받았다.



학교가 끝나면 뭘하니?”
소와 염소를 몰고 저 산 너머 들판에 가요.”

4~5살이 넘으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가축몰이를 하고,
10
여세를 넘긴 여자아이들은 조기결혼을 강요받거나,
저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궂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길을 걸어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그 귀하디 귀한 물이 새까만 구정물이 될 때까지 아끼고 아껴가며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아이들의 그 야무진 손은,
굳은살이 박혀버린 아이들의 맨발은, 나를 슬프게 했다.

2010년 초 보건소가 완공되고 본격적인 의료지원 및 아동결연 사업이 시작되면서
일마르바에 시원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

마을사람들은 1365일 문을 여는 보건소를 통해
한화
500원 정도의 저비용으로 안전하고 전문적인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일종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여 학생들의 의료비를 지원함으로써,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했다.
계절마다 아이들에게 감기약과 구충제, 결막염 예방약을 보급하는 것도 주 업무 중 하나였다.
하루 평균 15명에서 장날에는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보건소를 찾았다.

일마르바 보다 더 깊은 산골 오지에 거주하는 마사이 주민들을 위해
한 달에 두 세 차례 이동진료를 다니기도 했다
.
자동차에 의약품을 싣고서 외진 마을들을 찾아다니면,
마을주민들은 아이를 엎고 어르신을 부축하고 산에서 들에서 모여든다.
황량한 들판이었던 곳이 이내 100여명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해 진다.

어쩌면 지쳐있는 그들에게 건넨 몇 알의 알약과 우리들의 관심과 위로는,
의료진료 그 이상의 치유였는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시작된 진료가 해질녘이 되어서야 끝이 나면
마을 사람들은 꼭 우리의 손을 잡아끌고서 십시일반 준비한 음식거리를 내온다
.
여간해서는 잡지 않는 염소를 잡아와 다리 한 쪽을 불쑥 내미는 그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은,
기아와 질병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은 것이었다.



본격적인 아동결연 사업이 시작되면서
,
굿피플 케냐 사업장은 최우선적으로 아이들이 학비문제로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했고,
집안형편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입학시켰다.
직접적으로 후원자가 연결된 140여명의 아이들에게는 새 신발과 교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직접적 교육지원을 통해 아동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학업에서 배재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한 지역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놀이터 부지를 마련하고 시소, 그네, 미끄럼틀 등의 놀이시설도 마련해 주었는데,
주변 일대의 마사이마을을 통틀어 이러한 놀이터 시설을 갖춘 곳은 일마르바가 유일했다.
아이들의 영양상태 개선을 위해 유치원 급식을 지원했고,
학교가 쉬는 매주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끼와 재능을 맘껏 발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예체능교육을 실시했다. 100여명의 아이들은 가축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대신
노래와 춤을 배우고
, 그림을 그리고, 함께 체육활동을 하며 아이답게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아동결연 프로그램 진행 후 아이들의 복장상태 및 교육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학교 측은 학비지원을 통해 매학기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가능해지자
아동복지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
일마르바의 변화는 입소문을 타고 인근에도 전해졌고,
교육에서 소외된 채 살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처음 80여명이었던 유치원 아이들은 2010년 말 110여명이 되었으며,
초등학교에도 지속적으로 입학생이 증가했다.

사람들은 아동결연사업을 축복이라 말했다.
나는 매월 초 추가로 후원자가 연결된 아이들의 명단을 알리는 것이 짜릿했다.
결연이 맺어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얼굴에 번지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아동결연사업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를 쫓아다니며
나는
일방적인 지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배웠다.
현지 사람들의 needs
를 파악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인식변화와
주민들의
empowerment를 이끌어야 한다고 배웠다
.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이론과 최빈국의 실상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옥수수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지식고양과 인식변화의 중요성만을 제창할 순 없었다
.
당장에 그들의 실질적 needs는 끼니를 제 때 챙겨 먹거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담요 한 장을 지급받는 것,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
이러한 이유로 일마르바에서의 사업은 어쩔 수 없이 일부분 긴급구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을 맞닥뜨릴 때 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거기서 내가 찾은 해답은 주민참여를 이끄는데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무언가를 공급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면,
대가없는 퍼주기 식은 하지 않겠다.’
라고 결심했다.



아이들 급식을 위한 식자재는 지원하되, 음식 조리와 급식자재 관리를 위한 인력은 주민들이 충당하게 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나 급식소를 건축할 때에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호소했고,
무상 이동진료 시 마을사람들이 행사진행을 돕도록 했다.

또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과 에너지를 공유하기 위해,
학교 관계자 및 아이들과 최대한 자주 만나려 애썼다.
마을자치회와 함께 사업에 대한 중요사안을 논의했고,
학부모 미팅을 주도하여 아동결연 정책에 대한 의견과 피드백을 듣는데 집중했다.
산 속 깊숙이 숨어있는 집들을 온종일 찾아다니며 가정방문을 하고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
지역주민들을 사업에 적극 개입토록 하여
우리가
함께만들어가는 사업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사람들은 점차 자신을 사업 구성원으로 느끼며 책임감을 갖게 되었고,
진정으로 내 마을과 내 아이를 위한 일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종종 케냐의 다른 부족 사람들조차 굳이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불편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마사이족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
하물며 한국에서 20여년을 편히 살던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굶주림을 느껴본 적도,
약 한 알이 없어 아픔을 그저 참고 견뎌야 했던 적도,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배움을 포기해야 했던 적도 없다.
이런 내가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어쩌면 오만이었는지 모른다.

1년의 시간은 처절한 배움의 시간이었고 그들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개도국 사람들은 원조에 의지하려는 근성이 문제다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없다.
어째서 의지할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바랄 수밖에 없는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벼룩에 수십 방 물려 몸 곳곳에서 진물이 흘러도,
며칠씩 전기가 끊기고 물을 구할 수 없어도,
나는 그곳에 사는 것이 좋았다.
책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진짜 행복과 아픔
, 진짜 고민과 해답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대접하겠노라며 1시간이 넘도록 불을 피워 차 한 잔을 내오시는,
내 손에 수줍게 달걀 두어개를 쥐어 주는 이 사람들이 나는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사무실 일대를 가득 메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사랑했다.
현지사람들의 해맑은 미소, 그것 하나면 나는 충분했다.
주민들과 함께한 소소한 행복들이 있기에 나는 언제나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나의 서러웠던 눈물들은 그분들의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몇 십 배 보상을 받았다.

처음 케냐 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놓아야 했다.
안정적인 생활의 궤도에서 벗어나,
2010
년 한국에서 만들 수 있었던 추억을 포기했고,
딸이 편히 살기를 바라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저버리면서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결정을 결단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케냐 일마르바, 바로 그곳에 그들이 있었기에...

_ 해외봉사단 김은아 단원


2011/07/17 08:03 2011/07/17 08:03



 
이은결의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만남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1/03/20 15:22



이은결의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만남

해외봉사활동은 항상 어렵습니다
.
마술을 사랑하고, 마술로 세상을 살아가는 저 이지만
잔인한 현실 앞에 마주서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마술이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기적을 일으키기엔 아직 내 능력이 너무 모자라다고 느껴집니다
.

1년전 지진이 휩쓸고 간 절망의 땅 아이티.

산산이 부서지고 토막 난 그날의 고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루버그에 있는 한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이유도 모른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모여살고 있는 곳.

이 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마술을 펼쳐야 할까.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듭니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도 아이들에게선 해맑은 무엇인가가 느껴집니다.
조명과 음향이 갖춰져있는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 자니 무언가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하고 큰 마술이 아니야.
마술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충분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손가락 마술부터 시작했습니다
.
아이들이 웃습니다. 자신감도 생깁니다.
이번엔 꼬마숙녀를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종이를 잘라달라고 부탁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는 문제 될 것이 없네요.
잘라준 종이를 돌돌 말아 꼬마숙녀의 입김을 불어 넣습니다. 이젠 펼칠 차례죠. ‘짜잔~!’

미니마우스 왕관이 나타납니다. 탄성이 나오고 박수가 쏟아집니다.
작은 것에 감동하는 순수한 아이들의 얼굴이 참으로 밝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상처난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독여졌으면 합니다
.



워낙에도 물이 부족한 나라여서 지진 이후 물공급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물이 불규칙하게 나오는지라 이 곳의 환경은 상당히 비위생적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도착한 날 마침 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목욕을 맡기로 했습니다.
조금만 더 깨끗한 환경이 조성되면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텐데.

아이들은 오랜만에 하는 목욕이라 마냥 신난 모습이었습니다.
결국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물놀이로 바뀌고 말더군요. 하지만 무작정 물놀이만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물이 나오는 날은 대청소의 날이기도 합니다.
먼저 사람들이 씻고, 씻고 난 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난 물로 청소를 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물은 생명입니다.
모처럼 나온 물에 깨끗하게 씻겨져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마음속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씻겨 나가길 잠시 빌어봅니다
.

헤어질 무렵 고아원 뜰에 염소가족이 나타납니다.
어미에게 달려와 젖을 먹는 새끼염소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아픕니다.
지진 때문에 갑자기 고아가 된 아이들.
이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1/03/20 15:22 2011/03/20 15:22



 
‘그래도 이게 내 삶인 걸!’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0/09/08 11:25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루 한끼의 식사가 소중한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찾아
내 인생의 1년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다짐해 온지 3년.

그 3년의 계획과 다짐 끝에, 굿피플 아동결연 담당자로서 저는 인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동결연이 무엇인지도,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돕겠다고 14시간을 날아서 인도 뉴델리 땅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꿈이 NGO봉사자가 아니고, 긴급구호나 국제기구에서 일할 마음이 있는 사람도 아닌,

그저 평범한 지리교사를 꿈꾸고 있는 젊은 대학생일 뿐입니다.
TV에서 세계 곳곳의, 가난과 기아로 허덕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눈물이 흐르곤 하는...
그래서 그냥 단순히 그런 마음에 봉사가 하고 싶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인도에 와서 눈 크고, 눈 맑고, 눈 예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만 그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이성의 눈을 멀게 만들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신발을 신지 못하고 있구나’

‘옷이 두 개뿐이구나’

‘바지에 구멍이 있구나’


이런 사실들은 이미 TV를 통해 많이 보아왔던 장면들이기에 제 마음에 큰 슬픔을 주지 못했어요.
그런 가난에도 불구하고, 미소가 너무 예쁘다는 사실만이 늘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소를 찾아 온 사람처럼…

그런데,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기에.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NGO활동에 참여하러 왔을 때의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의 모습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NGO활동 때에는 해맑게, 순수한 아이다운 미소를 마음껏 뿜어내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는 가난을 짊어지고는 그 무게를 느끼며 살고 있었던 거지요.





무닐카 street children들은, 학교를 가는 날도 드물고,
매연의 농도가 서울의 열 배도 넘을 듯이 숨막히고 매운 인도의 도로가에서
하나에 200원짜리 옥수수를 불에 구워서 팔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신호등에 정지해 있는 차량 사이를 걸어다니며 창문에 붙어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다’
고요.


옥수수를 굽고 있던 아이는, 그런 모습을 제게 들키자 더 이상 제게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NGO활동 때 마냥 활짝 아름다운 웃음을 지어주던 그 아이가,
옥수수를 구우며 파리를 쫓고 있을 때 지었던 그 표정을 저는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삶에 단 한 톨의 ‘희망’도 느낄 수 없는 눈빛.
자기가 옥수수를 구우며 파리를 쫓고 있다는 사실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을 만큼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게 내 삶인 걸! 그래’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너무나 깊은 체념의 그늘이 그 아이 얼굴에 있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이면, 저 나이 때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해도 저 표정을 어루만져 줄 수가 없을 것이라는 큰 절망감이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의 꿈은 ‘의사’였습니다. 그마저도 제겐 너무 끔찍한 거짓말 같았어요.


옥수수와 의사.

너무 슬퍼서 울어버릴 뻔 했지요.
너무 미안해서…




여러분이 TV를 통해 경험했던 아이들의 생활 모습 그 이상으로,
깊고도 깊은 가난의 고리가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이며 아이들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무닐카 거리의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집이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넌 집이 있으니까’ 이런 알량한 마음으로 아이의 삶을 판단했던 제가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졌는지.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집을 가진 아이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선을 다해 이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게 저 또한 노력할 것입니다.


이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그래도 언제나 꾸준히 빛나고 있는, 아이들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웃음을 지켜줄 수 있도록.



인도지부_ 아동결연 자원봉사자 조아영



2010/09/08 11:25 2010/09/08 11:25



 
라오스에서 싸-싸(천천히)와 기다림을 배우세요!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0/04/29 16:27



라오스 비엔티안에서의 삶도 어느덧 한달 반(능드안킁)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라오스 왓따이 공항에 도착했을때 느낌은... 휑~. 하지만 지부장님과 숙소로 향할 때 본
거리의 포장도로, 많은 오토바이 그리고 자가용들... 라오스는 지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여기 수도 비엔티안 만큼은 우리가 말하는 최대 빈민국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2년 전만해도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와 자가용이 없었다고..
여느 나라처럼 이곳도 아침과 저녁에 교통체증이 확연히 늘어나고 있으며 사고도 잦아져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대부분 외국 자본에 의존하는 라오스 정부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


여기는 열대기후로 인하여 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특히 낮에는 더더욱. 오후 4시 이후가 되어서야 거리는 활기를 띤다.
유일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외국인여행객!
한번은 나또한 시내를 둘러보겠다고 남푸에서 딸랏사오까지 걸어서 간적이 있다.
이날 나는 더위를 먹고 다시 한 번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지인이 충고한다. 코코넛주스 등 과일주스를 많이 마시라고. 


라오스 사람들은 참 여유롭다. 그리고 느리다. 날씨에 상관없이 이곳은 정전이 많이 난다.
저번엔 천둥번개로 인하여 큰나무가 부러져 전선을 건드렸고,
내가 살고있는 집이 하루종일 정전이 된 적이 있었다.
체감온도 40도나 되는 상황에서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심지어 전력으로 나오는 물까지 나오지 않으니,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아무 대책이 없어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간절히... 마인드 컨트롤을 해가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라오스인들에게는 이것이 생활이다. 단지 더울 뿐이다.
곧 전기는 들어올 것이고, 그때 되면 일을 다시하면 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것을 통해, 성격이 급한 나는 와이와이(빨리빨리)가 아닌 싸-싸(천천히)와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
버-뻰냥(괜찮다)이라는 말속에서도 라오스 사람들의 문화를 알 수 있다.
때로는 나에게 상대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뻰냥 이란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상대에게 소리지르며 화를 내거나 하진 않는다.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냥 기다린다.


이곳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언어교육을 받은 후 포장과 비포장도로를 달려
약 3시간쯤 떨어진 렁싼이라는 지역의 학교에서 영어교육과 컴퓨터교육을 할 예정이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필수인 나는 이곳 비엔티안에서 열심히 언어교육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해맑고 마냥 이쁜 아이들..
하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이들이 직접 경제활동에 나서야 하거나,
학교까지는 거리가 멀어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다행히 해외원조단체들에 의해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학용품 지원사업,
학교 유치원사업, 의료봉사사업 그리고 지도자 양육 등 여러 어린이 지원사업 등으로
이곳 아이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이들을 위한 생활, 보건 환경 등 여러 시설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계속 성장해 가고 있는 라오스!

수도에서부터 지역사회까지, NGO 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희망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집안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조차 제대로 갖추고 살아가지 못하고,
병원시설이 부족해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희망사업이 운영되고
긍정적인 미래창출효과를 마음껏 누리는 라오스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나 또한 이곳에서 더 낮아지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나누며 배우고 싶다.

글_2010 해외봉사단 이효진 단원(라오스)


2010/04/29 16:27 2010/04/29 16:27



 
‘아이티’의 절망 속에서 보게 된 새로운 희망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0/03/09 10:02

아이티 공화국(Republic of Haiti)은 서인도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히스파니 올라섬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공유한다. 섬의 서쪽 3분의 1과 인근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티’는 아라와크 어로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국토의 4분의 3이 산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공화국들 중 유일하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는 최초로 독립한 흑인 공화국이자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이후 두 번째로 독립한 나라다. 하지만 잇따른 독재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주민 대부분이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인 흑인이며,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 어이고, 종교는 국교인 가톨릭(80%)과 기독교(16%), 부두교 등의 기타 토속종교(4%)를 믿고 있다.

 

지난 1월 12일 현지 시각 오후 4시 53분 9초에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 인근 지표면으로부터 13킬로미터 깊이에서 발생한 강도 7.0의 지진은 23만 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아이티 대통령궁과 국회 의사당을 포함한 포르토프랭스의 주요 건물들이 붕괴되었거나 손상되었으며, 감옥 공항 병원과 같은 시설도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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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굿피플 재난 구조단의 일원으로 긴급구호 활동과 의료캠프, 그리고 향후 재건 및 지역개발 사업을 위한 사전조사를 목적으로 20박 21일간의 일정으로 아이티를 방문했다. 아이티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뉴욕을 거쳐 도미니카로 들어가 육로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로 들어가기까지 꼬박 3일이 걸렸다.

 

호텔 등의 건물들이 거의 무너져버렸기에 우리 일행은 텐트를 치고 캠핑 생활을 해야 했으며, 물과 음식이 부족해 거의 씻지 않고, 가져간 라면과 햇반으로 끼니를 떼우며 지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참상보다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앞으로 다가올 부흥과 회복의 비전을 보고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충만해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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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아이티의 상황은 분명 심각했다. 도시 전체가 무너져 버린 건물 잔해와 쓰레기로 뒤덮혀 있었고, 아이들은 거리에 몰려다니며 물 한 병을 얻기 위해 달려오는 트럭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곳곳에서 구호 물품을 얻기 위해 군인들의 통제 아래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콩 한 봉지 때문에 폭도가 되기도 하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모습 속에서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이티의 눈물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위한 모금을 많이 했는데 각 단체들이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잘 집행하길 소원하게 됐다.

아이티는 지진이 나기 전부터 매우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의 나라였다. 사람들은 진흙으로 과자를 구워 먹기도 하고, 문맹률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가 세계에 알려지고 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아이티를 돕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이티와 그 민족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 한다고 믿는다.

 

아이티 사역을 마쳐갈 즈음에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2월 10일 TV에 아이티 대통령이 나와 전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지금 아이티는 너무나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2월 12일부터 14일까지 모든 사람들이 오전 금식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대통령 궁 앞에서 새벽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회를 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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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호소를 한 다는 것은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2월 12일 새벽에는 무너진 대통령 궁 앞에 150여 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했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도 함께 했다.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일을 중단하고 곳곳에서 기도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을 드리는 것을 보았다. 여러가지 다원화된 사상을 가지고 있던 신앙들이 하나님 한 분으로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니느웨 성의 회개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델마 75라는 산 위의 지역에서 의료 캠프를 3일간 했다. 원래는 이틀만 하기로 했는데, 하루 더 의료 캠프를 열게 됐다.

그 이유는, 캠프 마지막 날인 둘째날 모든 사람들과 이별을 하고 산을 내려왔는데 우리 팀의 카메라와 캠코더, 그리고 비행기 표를 넣은 가방이 분실됐다. 아마도 산 위의 캠프에서 잃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찾을 생각은 없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다시 산 위 마을로 갈 수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우리들의 이동 진료 사역을 도와주던 백삼숙 선교사님이 강권적으로 델마 75지역으로 하루만 더 가서 사역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선교사님이 하도 강하게 권하셔서 우리는 의료팀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CPI 클리닉에서 진료를 하고, 절반은 다시 델마 75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다시 올 줄 알았을까.

 

뿐만 아니라 그 지역 리더가 우리가 잃어버렸던 카메라 가방을 가지고 왔다. 감사해서 사례를 하려고 하니, 우리를 도우러 온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전날 우리 카메라 가방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전달해 줄 방법을 찾다가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그 팀을 올려 보낼 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었다. 정말 소름이 끼쳤다.

 

아이티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한다. 아이티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절망의 땅이 희망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티의 회복을 통해서 전 세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다스리심을 증거하실 것이다. 이 일에 우리 굿피플이 사용되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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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티에 충분한 음식과 식수가 공급될 수 있도록, 무너진 건물 잔해와 쓰레기가 속히 치워지고 새로운 주거지 환경을 만들어지도록, 지진 당시 다친 사람들이 온전히 회복되도록, 아이티 사역을 하는 많은 단체들이 공정한 마음과 순전한 마음으로 아이티 사역을 하도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다스리심이 아이티 전역에 있을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길 원한다.

 

- 굿피플 변성우 목사 -

 

 

2010/03/09 10:02 2010/03/09 10:02



 
2010년 천사들의 소망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10/01/06 19:09

어려운 지구촌 친구들을 돕기 위해

 

또래돕기 저금통에 정성껏 용돈을 모아온 천사들...

 

 

내 또래 친구들이 신발도 없이 거친땅을 다니고,

 

화장실도 없이,

 

비가오면 물이 새는 움막같은 집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천사들은

 

군것질 할 돈도, 게임 할 돈도 아껴가며

 

열심히 사랑을 모아왔습니다.

 

 

나눔의 의미와

 

베푸는 삶에 대해 배운 천사들.

 

2009년 굿피플 글로벌 리더 교육을 받으면서

 

또래 친구들의 꿈도 응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천사들의 생각도 꿈도 소망도 한층 더 쑥쑥 자랐습니다.

 

 

2010년 새해에 천사들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밤에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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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이지만,

 

작은 가슴에 사랑이 가득 꽉 차있네요 ^^

 

또래 친구들이 천사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금새 희망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2010/01/06 19:09 2010/01/06 19:09



 
11+11=1004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09/11/18 10:46
 

11월11일 빼빼로데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즐거운 날^^


여러분은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여기에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작은 천사 한분은~

우리나라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해남땅끝마을 작은 집에 거하는 친구들에게 행복을 전하기로 했어요.






작은 상자 안에 가득한 빼빼로를 받아든 친구들 한명 한명은

빼빼로를 선물받아 얼굴이 빨갛게 물들여질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빼빼로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작은 천사를 위한 기도를 하고 즐거운 시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삭! 아삭! 아사삭! 톡! 톡! 냠냠!

하하하!! 호호!! 헤헤헤!!





빼빼로데이의 마음이 여기 땅끝에도 사랑의 기쁨으로 피어나

즐거운 우리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바닷가의 밤을 메웠습니다.







언제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행복한 시간을 주신 후원자님은 우리의 작은 천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





2009/11/18 10:46 2009/11/18 10:46



 
의료봉사 숨은그림 찾기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09/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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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이소~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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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살살  합쇼~ 나이 80이 되어도 주사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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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도 이렇게 가깝게 날 처다보지 않는디~ 선상님 부끄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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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의 변신은 무죄~
서울서 가져온 영양제는 색깔이 흰것이 겁나게 비싼것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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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젊었을땐 한가닥 했쓰야~
너도 나이들어봐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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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뒷태화보
나는 요로케 꼬고 앉아야 새색시 같은게~~

2009/07/23 00:00 2009/07/23 00:00



 
산넘고 물건너, 알루난 마을을 향해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09/06/22 00:00


매주 두 번, 우리는 알루난 마을로 향합니다. 
1시간가량 소요 되는 이 길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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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강이 흐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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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된 길도 만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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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뒤에는 진흙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알루난 마을에 가기 위해선 꼭 4륜 구동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굿피플만의 4륜 구동차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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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스 시청에서 우리에게 멋진 4륜 구동차를 빌려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궂은 날씨도 비가와서 진흙탕 길도 마음껏 달릴 수 있어요.



멋진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4륜 구동차가 있으니까요.



 

2009/06/22 00:00 2009/06/22 00:00



 
쏘바~ 비눅의 집에 놀러오세요.
 샤방샤방 현장 뒷담화    2009/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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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바~ 오늘은 우리 아버지 센테로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오르망케키 마을의 촌장이시고, 나망가 자치단체 부의장을 맡고 있지요.
하지만 센테로는 평소에 어깨에 힘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접 받으려 한다거나 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죠. 가족 자랑은 나중에 또 다시 하기로 하구요,
오늘은 약속대로 우리 집 자랑을 한번 해보도록 할께요. 센테로가 좋아하는 모습 보이시죠?
이게 바로 굿피플과 코이카의 후원을 얻어 벌인 나망가 주택개량사업의 결실. 바로바로 벽돌 주택입니다.
아직 다 지어지진 않았지만 몇 일 후면 우린 여기에서 살 수 있게 된답니다.
사실 저는 너무 좋아서 이미 이 안에서 잠을 자고 있지요. 하지만 그건 비밀이랍니다.

지난번에 우리 마사이족의 집은 무엇으로 만든다고 했었죠?
소똥이었죠~ 소똥 집에 살아야 하는 비눅이 어쩌다 벽돌집에 살게 됐을까요?
그걸 설명하려면 예전 집으로 돌아가야해요 그래야 이해가 되실꺼에요.
그럼 저와 함께 소똥집으로 가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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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소똥 집이에요.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다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가는 나뭇가지를 엮어 넣죠.
그 다음이 소똥입니다. 방금 생산된 따끈따끈 김이 모락모락 하는 소똥을 주워다가
뼈대 위에 바르는거죠. 소똥은 밤에 가축들을 집 울타리 안에 가둬두기 때문에
아침 무렵에는 꽤 많은 양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그걸 가지고 엄마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답니다.
엄마들마다 한 채의 소똥 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통 혼자서 짓곤 하죠.
그래서 소똥집의 키는 엄마의 팔길이까지 입니다.
그래서 키가 큰 제가 집에 들어갈 때는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들어 갈 수 있게 되죠.
겉만 봐서는 소똥집의 진가를 알지 못하니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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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계시면 머리 다치니까 일단 앉으시구요. 차를 한잔씩 대접하는 것이 예의니까
잠시 기다리시면 따뜻한 차와 함께 물 끓이는 아궁이도 보여 드릴께요.
물론 한국의 아궁이와는 다르죠. 그럼 물이 끓을 때까지 집 안쪽을 한번 돌아보세요.
반짝반짝 윤이 나죠? 겉은 햇볕이 따가워서 거북이 껍질처럼 갈라졌지만
안쪽은 식구들이 자꾸 만져서 반짝반짝 매끄럽게 윤이 난답니다.
그리고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도 역시 반짝거리고 있네요.
한국에서는 종이로 도배를 한다던데 마사이족은 떠돌이 유목민이라 언제 이사를 갈지 몰라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살아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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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는 마마(아줌마)들이 차를 끓이느라 소란스럽군요.
아궁이 보여 드릴께요 마마들! 옆으로 좀 비켜보세요. 저희 동네 사람들은 모두 말이 참 많아요.
작은 일 하나를 할 때도 토론을 즐기기 때문에 그런거죠.
어쩌다 싸움을 할 때에도 우리는 폭력보다는 논쟁을 통해서 해결하곤 한답니다.
마사이족 특유의 용맹함은 다른 부족이 마을에 침입하거나,
맹수가 가축이나 사람을 노리고 덤벼들 때 사용한답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키우는 소나 양처럼 온순하게 살아가지요.
그러나 최근에 다른 마을에서는 외부와 접촉이 잦아져 가끔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 우리 마을에 그런 사람은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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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궁이에요. 이런! 설명하려니까 불이 꺼지려고 하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마사이족은 언제 어디서나 나무만 있으면 불을 피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정말 불이 꺼지면 큰일이에요. 엄마가 아버지께 야단을 맞게 되거든요.
집 안의 아궁이는 집을 따뜻하게 하고, 차를 끓여주고, 우갈리(옥수수가루떡)도 만들고,
가베지(채소)도 볶습니다. 적도 지방에서 따뜻한 건 왜 찾냐구요?
아프리카는 책상지형이라고 해서 대륙 중앙이 불쑥 솟아 있습니다.
고원 지대죠. 그래서 낮의 강렬한 태양과 더불어 밤의 서늘함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밤엔 보온이 필요한거죠. 엘레와?^^
엘레와는 ‘알았어?’ 라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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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설명에 옆집 할머니가 왜 등장했을까요?
환하게 웃고 있는 옆집 할머니 모습인데요. 할머니 눈을 한번 봐주세요.
아이구 눈꼽이 잔뜩~ 아니에요 할머니는 성격이 깔끔하셔서 세수를 잘 하신답니다.
그럼 이건 뭐냐구요? 눈병이에요. 마사이족은 태어날 때 아주 건강한 눈을 갖고 태어납니다.
1km떨어진 곳에 서있는 사람이 누군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아궁이는 아주 매운 연기를 뿜어내지요.
게다가 타고난 재가 날려 먼지도 아주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은 눈병에 자주 걸리게 된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 백내장에 걸리거나 할머니처럼 앞이 잘 안보이게 되는거죠.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할머니는 여러분이 마을을 찾아와주면 언제라도 행복하니까요.
엘림 클리닉이 조금 더 빨리 세워졌더라면 할머니도 우리처럼 건강한 눈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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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 센테로도 백내장이 시작된 것 같네요.
얼른 제가 소를 열심히 키워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가까이서 보니 더욱 잘생겼죠? 재호가 물을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엘림 베이스까지 태워다 준다고 해서 저렇게 싱글 벙글이 되셨답니다.
하긴 기도 하실 때 빼고는 늘상 웃는 모습뿐인 밝고 맑은 우리 아버지 센테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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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몇 명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학교를 못다녀서 숫자를 10까지 밖에 셀 수 없거든요.
엘림마을 응오네네 가족들인데요, 네? 가족이라니까요 한!가!족!
왼쪽에 양복입은 키세메이 아저씨가 가장이구요
그 옆에는 일부다처제의 마사이족 관습에 따라 여러 명의 부인들과 자식들.
아직 장가 간 아들이 없어서 손자는 없는 우리 부족 속에서는 아주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입니다.
소 치러 나갔는지 안 보이는 사람도 몇 명 있네요.
아무튼 이 많은 사람들이 방금 전 그 작은 소똥 집에서 살고 있는 거에요.
그러던 어느 날~ 공정길 지부장님께서 우리 마을 집을 신식으로 개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굿피플과 손을 잡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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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벽돌 정리하는 사람이 우리 형 수푹입니다. 별명은 스프에요.
가끔 스튜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래도 우리 형은 언제나 저렇게 벽돌을 찍고 있습니다.
우리 직장 내에서도 꽤나 힘든 일 중에 하나인데,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중이랍니다.
저 벽돌이 바로 우리 집을 만드는데 쓰인 그 벽돌이거든요.
우리는 주택개량 사업 덕분에 집도 생겼고, 형은 직장도 얻었죠.
예전에는 몇 일 동안 나무를 베어다가 밤을 세고 숯을 구워서
타운에 나가 파는 게 직업이었던 우리 형이 반듯한 직장을 갖게 되었고,
형을 따라 저도 엘림의 경비원이 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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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는 이런 광경인거죠. 2인 1조로 일을 하는데, 한 명은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벽돌 기계에 매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삽으로 기계에 벽돌 반죽을 붓고, 찍혀 나온 벽돌을 건조시키기 위해 줄을 맞춰 쌓습니다.
이러다가 기운이 빠지면 교대를 하죠. 벽돌은 시간이 흘러서 햇볕을 심하게 쬐고,
비를 자꾸 맞으면 약해지기 때문에 주택건설 일정에 맞추어 그때마다 생산하게 됩니다.
많이 힘들텐데도 우리 수푹 형은 힘든 내색 없이 아침에 출근했다가,
해질 무렵 자전거에 물을 가득 싣고서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물론 그때가 제 출근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물탱크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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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어진 개량 주택의 모습이에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죠? 세 칸 일자형 집의 형태랍니다.
가운데 문으로 들어서면 거실이 있고,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있는 모습이지요.
방도 넓어서 다섯 명도 넘는 사람이 한 방에서 잘 수 있어요.
얼른 우리 집도 완성 되어야 우리 예쁜 엄마랑 동생들이랑 함께 지낼 수 있을 텐데.
곧 지어진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죠… 어! 저기 문이랑 창문을 실은 트럭이 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얼른 가봐야겠습니다. 업무 시간 외에 일을 도와주면 가끔 사탕을 얻을 수 있거든요 ^^
다음엔 물탱크 이야기 해 드릴께요. 기대하세요! 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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