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든 모두 내려놓고 떠날 사람의 마음으로
몇 주 전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국제NGO 지부장님과 만났습니다. 잠시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뵈었는데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기에 한 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무엇보다 최근 활동 소식이 듣고 싶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일한지 벌써 13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가치가 있는데, 이는 당사자의 주체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 떠날 사람이기에 당사자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여 계획하고 실행하게 돕는 사람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마음으로 어떤 일이든 가급적 현지 주민들이 그 일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활동한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도움과 지원은 자칫 그들의 삶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은 우리의 시선이지 실제 당사자의 삶에 관해서는 직접 어떻게 느끼고 또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물음이 일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일해 왔고 최근에는 그 결과가 조금씩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늘 현지 직원들을 믿고 응원했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일에 앞서 그 지역 주민을 만나 상의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한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거드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동보호시설이 필요할 때도 (예산이 넉넉했어도, 새 건물의 요구가 있었어도) 건물을 새로 짓기보다 그 마을의 비슷한 아동시설을 찾아가 상의했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설을 활용했고 운영 또한 위탁했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이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한 결과, 이제 한국인으로서 지부장의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번처럼 한국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워도 매끄럽게 잘 운영되고 있으며, 한 해 정도 안식년을 가져도 큰 걱정이 없었다고 합니다.
수십 년의 국제NGO활동을 통해 드러난 문제의 핵심에는 원조기관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떠나지 못하는 활동가들, 아니 떠나기 싫어하는 활동가들이 문제라고 합니다. 당사자의 삶이 비참할수록,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문제가 복잡할수록 전문가의 역할은 절실해지고 그 활동은 빛이 납니다. 전문가의 필요는 당연해지고 결국 그러한 외부의 전문적 도움이 당사자와 마을을 살린 결과를 얻게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돕는 사람과 그 마을을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어두운 면, 약점, 단점만 보려 합니다. 우리가 쓴 사업계획서, 후원요청서, 이런저런 홍보물을 그 당사자, 그 마을 사람들이 본다면 어떨까요?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희망이 사라진 마을에서 살고 있었구나…”
우리의 도움이 오히려 그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우리 가정, 우리 마을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잘해 왔던 일, 잘 할 수 있는 일, 우정과 환대의 오랜 문화, 미담. 이런 것을 찾고 이를 살려 생동시키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좋은 전통 '두레'와 같은 협동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도 있습니다. 책 <가난한 휴머니즘>을 보니 아이티의 두레 '콘비'가 있고, <Man and Development>를 읽으니 탄자니아에는 '우자마'라는 협동문화가 있더군요. 아이티와 탄자니아를 돕겠다고 나선 국제NGO들은 이런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까요? 마을의 문제, 약점, 단점을 들춰 이를 해결하겠다고 성급히 나서지는 않겠지요?
몇 주 전 만난 그 지부장님은 어느 나라나 두레, 콘비, 우자마와 같은 좋은 문화, 강점이 있음을 생각했고 그래서 그의 활동에는 당사자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때가 차면 모두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전문기관이 늘어나고 전문적인 최신기법을 배운 활동가가 많아져도, 이런 활동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지 못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의 심장에서 나온 온기가 그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습니다.
지부장님께 내년 한국에 다시 오실 때 그 동안의 활동 경험을 나눌 세미나를 열자고 제안했는데 그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대됩니다.
글_김세진 사회복지사, <복지현장 희망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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